티스토리 뷰

2008년 드림웍스가 선보인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는 국수 가게 아들인 판다 포가 갑자기 전설의 용의 전사로 지목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 남짓으로 짧은 편이지만, 다 보고 나면 웬만한 장편보다 마음에 남는 말이 더 많습니다. 저는 특히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명언들,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주인공이 변해 가는 과정, 그리고 용문서를 둘러싼 재치 있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 영화 중반부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결말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짧은 러닝타임에 담긴 명언들

쿵푸팬더를 보고 가장 놀랐던 건 대사의 밀도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가벼운 액션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장면마다 곱씹을 만한 말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웃기려고 넣은 장면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의미가 담긴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늙은 거북이 사부 우그웨이가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매달려 자책하는 포에게, 어제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내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은 선물이라고 말해 줍니다. 영어로 '현재'와 '선물'이 같은 단어라는 점을 활용한 말장난이기도 해서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또 우연이란 없다는 말이나, 복숭아나무에게 원할 때 꽃을 피우라고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비유도 인상 깊었습니다. 조급해하는 시푸에게 건네는 이 말은 포뿐 아니라 성과를 서두르는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좋았던 점은 이 말들이 설교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포가 만두를 집어 먹다 혼나거나 계단을 오르다 지쳐 쓰러지는 우스운 장면 바로 뒤에 이런 대사가 이어지니, 웃다가 갑자기 마음 한쪽이 찡해집니다. 짧은 러닝타임 동안 웃음과 위로를 이렇게 촘촘하게 엮어 낸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더 많은 말이 들리는 영화라는 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주인공의 변화

포는 처음부터 영웅감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쿵푸를 동경하지만 실력은커녕 체력도 없고, 계단 몇 개만 올라도 숨을 헐떡입니다. 용의 전사로 뽑힌 것도 실력이 아니라, 폭죽을 매단 의자를 타고 무술 대회장 한가운데로 떨어진 우연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반응도 싸늘합니다. 사부 시푸는 어떻게든 포를 쫓아내려 하고, 무적의 5인방도 그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포가 밤에 혼자 앉아 자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털어놓는 장면은 웃음 많은 이 영화에서 유독 쓸쓸하게 다가왔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기대받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본 경험이 있기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누구라도 포기하고 싶었을 상황인데, 포는 쫓겨날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훈련장에 남습니다. 그 끈기가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포가 남처럼 되려고 애쓰면서 변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푸는 포가 먹을 것 앞에서만큼은 놀라운 집중력과 몸놀림을 보인다는 걸 발견하고, 만두를 걸고 훈련을 시작합니다. 젓가락 하나로 만두 한 개를 두고 벌이는 대결 장면은 웃기면서도 감탄이 나왔습니다. 약점이라고 여겼던 식탐이 오히려 포만의 무기가 되는 과정이 이 영화가 말하는 성장의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 용문서에 담긴 비밀

영화 내내 모두가 손에 넣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용의 전사만이 펼쳐 볼 수 있다는 전설의 용문서입니다. 무한한 힘의 비밀이 적혀 있다는 이 두루마리를 차지하기 위해 악당 타이렁은 감옥을 탈출해 평화의 계곡으로 향하고, 시푸와 5인방도 이 문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그래서 용문서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커다란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기대감도 용문서에 쏠립니다. 저도 보는 동안 도대체 저 안에 어떤 대단한 비법이 적혀 있을지 계속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궁금증을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어냅니다. 문서가 펼쳐지는 순간 등장인물들의 반응이 제가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서 처음엔 어리둥절했고, 그다음엔 웃음이 나왔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반전이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국수 가게 장면처럼 지나가듯 등장했던 작은 이야기들이 용문서의 의미를 풀어 주는 열쇠가 됩니다. 앞에서 별생각 없이 보았던 대사가 뒤에서 다시 살아나는 구성 덕분에, 다 보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돌려 보고 싶어집니다. 무엇이 적혀 있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아는 순간 앞서 소개한 명언들까지 한 번에 연결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 줄 평: 웃다 보면 어느새 위로받고 있는, 짧지만 꽉 찬 영화.

가볍게 웃고 싶은 날에도,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지는 날에도 잘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아이와 함께 보기에도 좋지만, 오히려 어른이 되어 볼 때 더 많은 것이 들리는 작품이라 어른 관객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